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최근 제주도에서 성인 두명이 합동해 중학생인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성인 두명 중 한명은 피해 중학생의 모친과 동거했던 관계였으나 최근 이별을 통고받고는 동거 여성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동거 기간 중 피해 중학생이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이 동거 여성의 아들을 살해하게 된 동기라고 주장을 했다는데, 시도 때도 없이 엄마와 본인을 폭행하는 계부에게 ‘아버지’라고 쉬 호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살해 동기 못지않게 이 사건이 불가사의한 지점은 이전에도 가정폭력으로 이 가정에서만 여러번 신고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세건의 입건 기록이 있으며 최근 접근금지 명령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였던 여성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 그리고 형사사법기관 역시 (신상이 이제는 공개된) 백씨의 위험성에 대하여서는 충분히 짐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예고된 살인은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백씨의 전과다. 공범이었던 김씨의 전과 역시 성범죄 등 화려한 전력이 있었지만 백씨의 경우 대부분의 전과가 동거하던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열번 중 세번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로 처벌을 받았으며 두번째 동거 여성에 대한 보복폭행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기간 중에는 또 다른 여성에게 보복폭행을 하기도 하였다. 전과만 보더라도 백씨의 파트너에 대한 폭력적 습벽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하고도 끔찍한 것이었던 것 같다. 보복폭행 중 한건은 연인의 연고지에 불까지 지른 것이었다니 이번 중학생의 모친에 대한 보복폭행 중에도 가스배관이 예기에 의해 예리하게 절단된 사건은 백씨와 무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들에 대한 생명의 위협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씨와의 이별 뒤 단 한번도 백씨의 위협 행위는 ‘지속적 괴롭힘’으로 사건 처리가 되지 않았다. 이들 전과 역시도 가정폭력 신고 초기부터 경찰에 의해 열람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10월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동거녀에게 아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나 가스배관을 끊어놓는 행위들은 스토킹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여전히 있는바, 그것은 다름 아닌 경찰의 사건 처리 의지다. 만일 제주 사건이 연인 관계가 아니라 비면식 관계의 사람에 의해 일어났다면 과연 반복적인 폭행과 위협을 두고도 기다려보자고 녹화용 시시티브이(CCTV)만 부착했을까? 모르는 사람에 의하여 아이가 살해 위협을 당하고 있다면 스마트워치도 제공하지 않고 순찰만 돌고 말았을까? 사실상 이 모든 문제는 반의사불벌죄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가정폭력 사건을 일반 형사사건으로 여기지 않는 만연된 경계심 해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경찰은 가정폭력뿐 아니라 파트너의 스토킹 법조항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영장 없이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다. 이것은 연인 관계였다손 치더라도 마찬가지다. 뉴욕시에서는 특히 뉴욕 경찰청, 지방검찰청, 지역사회 파트너가 협업하여 스토킹 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담당자들을 위한 특수교육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어떤 지표들이 생명권 손실의 징후가 되는 것인지 스토킹 사건의 위험성을 미리부터 심각하게 다루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조기에 개입하여 성공적인 스토킹 기소 및 유죄 판결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또한 스토킹의 정도를 4등급으로 나누어 상습 스토킹, 즉 임시조치 등을 위반하는 경우 징역형까지도 선고하고 있다. 그래야만 백씨와 같은 집요한 스토커들로부터 취약한 여성이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중학생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살아만 있었다면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어린 소년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할 수 있는 것이 연인 간 폭력이며 스토킹 범죄다. 제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재발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