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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태균 칼럼] 대미지 컨트롤과 회복력

등록 2021-12-07 17:05수정 2021-12-08 02:32

문제는 사회적 갈등과 통합 문제이다. 시민사회의 노력에 의해 어렵게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1990년대 이후 시작된 사회적 갈등은 소위 남남갈등이라고 불리면서 30년간 계속되고 있다. 남북문제는 물론이고, 정파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모든 문제들이 남남갈등 속에 묻히고 있다. 모든 문제가 정치화되면서 사회적 대미지가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박태균ㅣ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최근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공동작업을 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 현대사와 한-미 관계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되었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 보니 각각 다른 분야의 전쟁사 전문가들과 한자리에 같이 가게 된 것이다. 숲에 주목하는 거시적인 국제정치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 나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태평양전쟁에 대한 분석 과정에서 당시 미국과 일본의 차이가 무엇이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전쟁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승리의 추는 미국 쪽으로 기울어갔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무엇보다 큰 차이는 기술과 과학, 그리고 경제력에서 벌어졌다. 유럽의 선진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자본과 인력으로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일본이 쫓아갈 수 없었다. 전쟁 전 일본은 영국, 독일과의 교류를 통해 혁신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전쟁 기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고립되었다.

관성에 젖어 혁신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도 있었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1941년 진주만과 동남아 전선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 전쟁이 정의의 전쟁이 아니었음에도,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승리에 도취해 있었다. 전황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어 보도되었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미국의 공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 섞인 생각)하에서 혁신은 불가능했다.

참전 군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가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군국주의자들에게 군인들은 일왕을 위한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했다. 전략의 가장 큰 기준은 일왕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여부였고, 전투에서 지고 살아 돌아오거나 포로가 되면 그것은 곧 굴욕이었다. 일왕이 내린 보급품을 버리는 것마저도 불충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역시 전투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군인들을 잃었다. 이들의 희생은 곧바로 의회에서 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타라와섬 상륙 과정에서 벌인 무리한 작전과 큰 희생으로 미국 하원에서 청문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군인 하나하나가 곧 국민이었고, 이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요인들과 함께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미국과 일본의 대미지 컨트롤 능력이었다. 이는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의 대미지 컨트롤에서의 차이는 미드웨이 해전이나 필리핀 해전에서 모두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다. 일본의 공군 비행사들은 자신들의 공격으로 미국의 함선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했다. 이는 상대방의 능력을 오판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국은 대미지 컨트롤을 통해 상대방이 침몰했을 것으로 예상한 함대들을 다음 전투에 또 동원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이 3년의 공을 들여 만든 최신형 장갑함 다이호는 필리핀 해전의 첫 출격에서 미군의 어뢰 한 발에 침몰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질서의 부작용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있던 상황에서 코로나는 더 깊은 내상을 남기고 있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지난 2년간 뛰어난 대미지 컨트롤 능력을 보여주었다. 방역이나 경제회복에 있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통제를 강화했던 국가와 차별화되는 높은 투명성도 모범이 되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갈등과 통합 문제이다. 시민사회의 노력에 의해 어렵게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1990년대 이후 시작된 사회적 갈등은 소위 남남갈등이라고 불리면서 30년간 계속되고 있다. 남북문제는 물론이고, 정파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모든 문제들이 남남갈등 속에 묻히고 있다. 모든 문제가 정치화되면서 사회적 대미지가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많은 약속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이슈에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미지 컨트롤이 잘되었고, 의미 있는 한국 사회의 회복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연속성이 중요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남남갈등으로 우리 사회가 입은 대미지를 최소화하면서 사회통합을 통한 회복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후보에게서도 사회통합의 메시지는 볼 수 없다. 단지 지금까지의 남남갈등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입장만 나타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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