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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태균 칼럼] 3·1절을 맞으며

등록 2022-02-22 14:45수정 2022-02-23 02:01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국수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상황에서도 선조들은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강조했다. 우리의 선택이 식민지도 아닌 세상에서 다시 한번 문화적 암흑기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3·1 선언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지난해 102주년 삼일절을 맞아 서울시가 설치한 서울광장 꿈새김판에 ‘3·1운동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해 102주년 삼일절을 맞아 서울시가 설치한 서울광장 꿈새김판에 ‘3·1운동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3·1운동 선언문은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일으키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며,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 그 두번째 이유였다.

무릇 모든 인간은 자유와 번영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헌법 10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한 지역에서 생활공동체와 문화공동체에 기초하여 만든 국가는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약소국의 국민들은 강대국에 의해 그러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아울러 조선의 식민지화는 비단 조선 사람들에게만 불행을 결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이 일본의 중국 침략을 위한 발판이 되고 있는 만큼 ‘조선의 독립은 중국과 일본의 분쟁을 이기고 동양 평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된다. 이는 곧 ‘사이좋게 사는 새 세상을 여는 것’으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의 숙명이었다고 할까? 1945년 해방 직후 미국은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구상하면서 20세기 초 이래 한반도가 불의의 강대국에 의해 독점적으로 통제될 때 동아시아 전체가 불안정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쩌면 한국전쟁을 전후해 미국이 한국의 중립국화를 추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3·1운동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나라를 되찾아야 할 이유로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독립을 피로 호소해도 모자라는데, 문화를 말하다니, 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가’라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우리 선조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자부심과 기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식민지화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1919년 우리의 선조들은 200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예견했던 것인가? 선조들이 예견했듯이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비티에스(BTS)에 이어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독립과 발전은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3·1 선언문은 한류가 계속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그 첫번째 조건이다. 이는 우리의 문화에 대한 애정만큼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우리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바랄 수는 없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은 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선언문에서는 “스스로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이 된다는 것이다. 한류는 인도적 정신에 기반한 민주화를 통해 만들어진 자유롭고 창조적인 분위기로 인해 가능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하에서 한국의 문화가 암흑기를 걸었던 시기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찾을 수 없었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에 기반한 작품도 나오기 힘들었다. 이는 한류에 영향을 주었던 홍콩 누아르나 일본 대중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침체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콩과 일본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가주의의 확산은 뛰어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또 한번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우리의 선택은 어쩌면 한류가 계속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인도적 정신’이 ‘새로운 문명’을 밝혀야 하는 현실에서 인종혐오, 여성혐오 등 배타적인 인식으로 또다시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국수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상황에서도 선조들은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강조했다. 우리의 선택이 식민지도 아닌 세상에서 다시 한번 문화적 암흑기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3·1 선언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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