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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금숙의 강화일기] 유리 이야기

등록 2022-04-10 14:24수정 2022-04-11 02:06

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신생아도 죽으라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는 세상인데. 무슨 개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해?” 친구의 말이다. “현행법상 개는 개인의 재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동물권단체의 직원도 말한다.

산책 중 웰시코기, 유리(가명)를 보았다. 두달밖에 안 된 유리는 마당을 신나게 뛰었다. 힘이 좋고 쾌활했다. 보호자는 유리를 몹시 애지중지하였다. 유리는 집 안에서 컸다. 가끔 유리와 당근이는 함께 뛰어놀기도 하였다. 한 5개월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유리 집 앞을 지나는데 유리가 마당에 묶여 있었다. 몹시 슬퍼 보였다. 마침 보호자가 마당에 있어 물었다. 왜 유리를 마당에 묶어놓았느냐고. 집 안에서 하도 뛰어다녀서 마당에 두었다고 했다. 유리는 일주일간 밥을 먹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이제 다시 집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유리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날 때마다 유리는 짧은 쇠줄 끝에 두 발로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짖어댔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유리가 보이지 않았다. 짖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시멘트 바닥에 그냥 엎어져 있었다. 다음날도 유리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유리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는 유리가 아프다고 했다. 다음날, 유리 집 대문이 열려 있고 유리 보호자가 마침 마당에 있었다. 유리는 우리를 보자마자 배를 드러내고 누웠다. 하얗고 까만 예쁜 털이 설사로 범벅이 되어 더러웠다. 벌써 2주째 설사를 한다고 했다. 더러워진 유리의 얼굴과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굶어서 뼈만 앙상했다. 단지 털 때문에 마른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유리 보호자는 영양제와 지사제 주사를 유리의 등과 목 뒷부분에 놓았다. 유리가 하도 밥을 안 먹어서 믹스커피를 타서 주었더니 그건 마시더란다. 나는 개에게 절대 커피를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고도 했다. 유리 보호자는 주사를 놓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유리 보호자가 쉬는 날, 우리는 유리를 보러 또 들렀다. 슈퍼에서 닭과 소고기로 된 캔을 몇개 사고 영양식 사료를 한 봉지 들고 갔다. 유리 보호자가 밥에 소고기를 넣어 죽을 쒀 주었다. 유리는 그것을 먹고 있었다. 여전히 설사를 한다고 했다. 배를 만져보니 빵빵했다. 아무래도 복수가 찬 모양이었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내가 말했다. 심장사상충일 듯했다. 초코를 처음 우리 집에 데려왔을 때 설사를 했었다. 그 증상과 비슷했는데 2주가 넘게 계속 설사를 하는 유리를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았다. 보호자는 설사는 해도 밥은 조금 먹으니 괜찮다고 했다.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 유리를 데리고 천천히 산책을 나갔다. 유리가 집 밖을 나가본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냄새를 맡고 또 맡고 오줌을 조금씩 싸며 자기 영역을 표시했다. 땅을 밟고 풀 냄새를 맡으며 좋아라 했다. 리드줄을 풀어주었다. 유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갈 힘도 없었으리라. 이리 오라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갔다. 영리했다.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니 웃었다. 웰시코기 특유의 미소였다.

유리를 다시 보호자 집에 데려다주니 보호자는 유리의 똥을 그새 물로 청소했다. 당근이와 감자는 대소변을 본 뒤에 밟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며 피해 걷는지 모른다. 유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개가 자기 냄새만 맡으며 자기 똥오줌에 범벅이 되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유리 보호자가 내게 고맙다고 쇼핑백 안에 늙은호박즙을 넣어주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가지고 가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꼭 유리를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괜찮다면 내가 병원비의 일부를 내고 싶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보호자는 똑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괜찮을 거라고.

다음날 유리를 담 너머로 보았다. 여전히 설사를 했고 밥은 손도 대지 않았다. 유리가 내 냄새를 맡았는지 벽 옆에 기대 누워 있다가 간신히 기어 나왔다.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엎드린 채 나를 보았다.

대한민국 법에서 개는 ‘사유재산’이다. 학대는 안 되지만 학대를 한다 해도 사유재산이기에 어쩔 수 없다. 개식용금지법이 통과가 안 되었으니 개인적인 식용을 위해 자신의 개를 죽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동물보호단체의 대답이다. “요즘은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학대하지 않아요”라고 도시에 사는 지인도 말한다.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옛 이웃에게 그 집 개의 소식을 물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개 두달 전에 죽고 새끼 한마리 또 가져다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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