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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이 대통령의 스포츠맨십 점수는? / 김종구

등록 2010-03-04 23:04수정 2010-03-05 09:59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엊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단 오찬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다 문득 불경스러운 질문이 떠올랐다. 이날 행사로 거둔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홍보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회사들의 광고 효과가 몇백억원에 이른다는 말이 나오는 형편이고 보면, 김 선수에다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이정수 등 스타들이 총출동했으니 그 액수가 간단치 않을 듯하다.

괜히 모든 것을 삐딱한 눈으로 본다고 나무라지 말기 바란다. 사실 이 정도는 대통령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이기도 하다. 과거 몇몇 대통령들의 스포츠와 정치 끼워팔기는 훨씬 심했다. 육사 축구부 골키퍼 출신으로 민족의 골키퍼를 자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별난 스포츠 사랑이야 익히 알려진 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심지어 프로레슬링 태그매치에서 이긴 선수에게 축하전화를 걸어 칭찬한 적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 오찬에서도 잠시 나온 말이지만 “메달을 따면 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라간다”는 공식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국가 대항 운동경기에서 등장하기 마련인 애국심의 분출은 대통령의 지지도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 않는다. 메달이 쏟아지면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이 당면한 악재도 묻혀버린다. 이번에도 온 국민이 올림픽에 환호하는 사이 문화방송에 낙하산 사장이 슬그머니 선임됐다. 어쨌든 청와대로서는 즐겁기만 한 게 올림픽인 셈이다.

스포츠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전할 때마다 이 대통령이 단골로 하는 말이 있다. 바로 “국운이 상승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권총 50m에서 진종오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이 대통령은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주례회동 중이었는데 그때도 “국운이 융성하는 시기인 듯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단순한 운동경기에서 ‘나라의 운세’까지 읽어내는 감각이 놀랍다. 물론 그 점괘가 잘 맞는가는 별도의 문제지만 말이다.

스포츠에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클수록 정치권을 향한 질타와 비판도 심해진다. ‘우리 젊은 선수들은 저렇게 잘하는데 정치인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는 구박이 빗발친다. 청와대 주례회동 중 금메달 소식을 접한 박희태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한 말도 “정치도 금메달을 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고 정치는 정치다. 신선한 감동에 목마른 대중의 정서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서로 성격이 다른 두 분야를 너무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욱이 대통령은 애국심에 불타 민족적 에너지 결집에 골몰하고 있는데 정치권이 발목을 잡아 문제라는 따위의 견강부회는 경계해야 한다.

굳이 스포츠에서 정치가 배워야 할 게 있다면 정신이 아닐까 한다. 잘 알다시피 스포츠 정신의 요체는 한계상황에 도전하는 혹독한 인내와 자기수련이고, 최선을 다한 뒤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다. 특히 정상에 오른 선수일수록 자신도 언제든지 패배할 수 있다는 겸허한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이 대통령은 이런 스포츠 정신에 투철한가. 세종시 문제만을 놓고 봐도 상대 선수를 밀치는 반칙(친박계 뒷조사) 혐의도 있고, 경기가 불리하다고 아예 판을 흔들어버리려는 시도(국민투표 부의)도 하려는 것 같아 찜찜하다. 게다가 스포츠의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마음인 불패신화에 젖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대통령은 지금 스케이팅 메달리스트들처럼 각종 국정현안에서 쾌속질주하고 싶겠지만 운동에서 힘을 잘 쓰려면 근력 못지않게 유연성이 좋아야 한다는 점도 유념했으면 한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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