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발견
전주에 사시는 천이두 선생님은 1930년생이다. 몇해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신다.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저명한 문학비평가였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분별력을 많이 잃어버리셨다. 그렇긴 해도 댁에 계실 때는 창가에 단정하게 앉아 책을 읽을 때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을 앓기 전에 무슨 일을 제일 즐겨 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그 아드님은 허허롭게 웃으며 한마디 더 보탠다. 제가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기타 치면서 술만 마시고 있을 거예요.
거동이 불편한 탓에 선생님의 외출은 자연스럽게 아드님의 통제 아래 놓인다. 어느 날 집안이 갑갑하게 느껴졌을 거다. 선생님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용케 아드님 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우리 고향 갑시다! 택시 기사는 횡재한 기분으로 경기도 고양까지 장거리 승객을 모시게 되었다. 점잖은 신사 어르신을 태우고 택시는 고양시로 달려갔다. 아차! 고양에 도착한 기사는 후회했다. 거기에 선생님의 고향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선생님을 파출소로 모시고 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가고 싶은 목적지, 선생님의 고향은 전북 남원이었다.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곳을 고향이라고 말해도 될까? 요즘 젊은이들에게 물으면 고향은 무슨 개뿔, 하면서 그냥 웃어버릴 것 같다. 그 많은 노래와 시에 고향이 등장하던 시절은 갔다. 이러다가 사전에 고향이라는 단어마저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 해도 설마 간절한 그리움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