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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기도

등록 2014-05-13 18:43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니다 말하게 하소서. 눈치 보느라 눈이 한쪽으로 몰려 붙은 도다리로 살아온 시간을 뉘우치게 하소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않게 하소서. 절실하게 사랑해야 할 것들과 죽도록 미워해야 할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하소서. 길이 없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길이 되어 걸어가게 하시고, 내가 내 운명의 주인임을 아프게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시고, 어두워지면 우주의 어둠이 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하소서.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배기량 많은 승용차를 탄다고 해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칠점무당벌레의 삶보다 우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나의 밥그릇이 소중한 만큼 남의 밥그릇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소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울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울음소리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남의 노래는 안 듣고 제가 부를 노래의 목록이나 뒤적거리는 노래방에서는 노래하지 않게 하소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게 하시고, 나뭇잎이 튕겨 올리는 햇빛 한 오라기도 감격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으로 하여 내 마음속 물관부에 늘 사시사철 서늘한 물이 흐르게 하소서. 당신과 나 사이의 아득하고 아득한 거리를 자로 재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미음을 저울로 달지 않게 하소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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