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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잡초

등록 2013-05-21 19:21수정 2013-06-17 15:30

안도현의 발견
시골에 작업실을 마련했을 때 내 계획은 소박하면서도 거창했다. 마당에 잔디를 꼭 심어야지. 울타리 안쪽에는 나무를 빙 둘러 심는 거야. 나도 드디어 땅에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는 거지. 마음이 들떴다. 이팝나무를 심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셨다. 마당에 나무 심으면 10년 뒤쯤엔 후회할지 몰라.

해가 바뀌자 마당 잔디 사이사이에 풀들이 돋아났다. 애써 심은 잔디를 풀들이 해칠 것 같아 마루에 한가하게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족족 풀을 뽑았으나, 돌아앉으면 또 다른 풀이 보였다. 괭이밥, 광대나물, 민들레, 고들빼기, 개망초, 토끼풀, 쑥, 질경이, 산괴불주머니, 제비꽃…. 그 이름을 하나하나 알게 된 건 소득이었지만, 그것들을 뽑는 일은 노역이었다. 몇 해 동안 나는 잡초 뽑는 일을 중요한 ‘작업’처럼 수행하고 있었다. 이웃집 어르신이 마당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또 법어를 던지셨다. 자갈을 한 차 쏟아붓든지 ‘공구리’를 쳐버리는 게 젤인디! 나는 내심 오기를 부렸다. 명색이 시인이 그럴 수야 없지.

10년이 지났다. 나무들의 키가 훌쩍 자랐고, 그만큼 그늘도 깊어졌다. 이번에는 나무 그늘이 잔디를 덮었다. 그러자 또 다른 풀들이 인해전술처럼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다. 나는 풀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초연한 척 혼자 중얼거렸다. 잡초가 어디 있겠어? 잔디도 풀도 서로 어울려 사는 거지. 그게 자연이지, 뭐.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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