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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소리

등록 2013-05-29 19:00수정 2013-06-17 15:29

안도현의 발견
내가 사는 이 고장에는 없는 소리가 없다.

들녘이 지평선 펼쳐놓고 숨 쉬는 소리가 좋고, 들녘 사이로 강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좋고, 산들이 손과 손을 잡고 기지개를 뻗는 소리가 좋고, 서해바다가 섬을 잠재우는 소리가 좋고, 밤마다 고군산군도 섬들이 옹알이하는 소리가 좋고, 변산 앞바다 주꾸미가 입가에 달라붙는 소리가 좋고, 갯벌 바지락이 바닷물 빨아들였다가 뱉는 소리가 좋고, 춘향이 그네 탈 때 치맛자락 날리는 소리가 좋고, 덕진연못 연꽃 향기가 물 건너가는 소리가 좋고, 가을에는 내장산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가 좋고, 겨울에는 무주 구천동 계곡에 눈 내려 쌓이는 소리가 좋고, 갑오년 농민군이 집강소 차리고 치켜든 횃불 타는 소리가 좋고, 진안 인삼밭의 인삼 뿌리 굵어지는 소리가 좋고, 금강 하구에서 숭어가 알 낳는 소리가 좋고, 장수 고랭지에서 사과 익어가는 소리가 좋고, 고추장 숙성되는 소리가 좋고, 콩나물 비빔밥 비비는 소리가 좋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손으로 입가를 훔치는 소리가 좋고, 한옥마을 김칫독에서 김치 익어가는 소리가 좋고, 판소리 추임새 넣는 소리가 좋고, 때로 추임새 잘못 넣었다고 핀잔하는 소리도 좋다.

여기는 없는 소리가 없어서 귀가 즐겁다. 귀가 즐거우니 눈도 즐겁고, 덩달아 입도 마음도 즐겁다. ‘여기’ 있는 소리가 ‘거기’라고 왜 없겠는가. 귀를 막고 싶은 일들이 많을수록 즐거운 소리를 찾아서 듣는, 또다른 귀를 열어보자.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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