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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닭개장

등록 2013-06-03 19:16수정 2013-06-17 15:27

여름이 되면 슬며시 당기는 음식이 닭개장이다. 음식점에선 좀체 맛볼 수 없다. 이건 우리 어머니의 주특기 요리 중 하나다. 닭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릴 때부터 어머니 옆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지금은 나도 마음먹으면 거뜬하게 끓여낼 자신이 있다.

닭은 집에서 키운 놈이 좋다. 푹 삶아서 식힌 뒤에 뼈에서 발라낸 살을 잘게 찢어 준비해 둔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이걸 한 솥 끓이면 우리 집 여섯 식구가 두 끼는 먹을 수 있었다. 그건 닭개장에 넣는 채소와 국물 덕분이다. 닭고기와 채소의 절묘한 결합이 닭개장의 맛을 결정한다. 무시래기나 배추시래기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데 나는 부드러운 배추시래기가 더 좋다. 마른 토란대와 고사리를 미리 삶아두는 것도 필수다. 숙주나물을 씻어 놓고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둔다. 채소는 많다 싶어도 괜찮다. 이렇게 준비해둔 닭고기와 각종 채소에다 조선간장,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으로 갖은 양념을 한 뒤에 밀가루를 뿌리면서 골고루 버무린다. 밀가루는 국물을 걸쭉하게 만든다. 닭 국물이 다시 끓을 때쯤 이것들을 넣고 센 불로 또 한참을 끓인다. 솥 안의 모든 것이 한통속이 될 때까지. 뜨거운 여름날에는 이 닭개장에다 찬밥을 말아야 제격이다.

우리 식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붉고 매운 닭개장을 퍼먹었다. 그런데 그건 닭다리 하나가 사라진 닭개장이다. 어머니가 맏아들인 나를 몰래 부엌으로 불러 통통한 다리 하나를 이미 먹인 것을 식구들은 모르고 있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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