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여름 해가 노루꼬리 반만큼이나 남았을 때, 저녁밥을 마당이나 마루에서 먹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는데도 어른들은 좀체 전등을 켜지 않았다. 그런 풍경이 오규원의 동시 ‘여름에는 저녁을’에 나온다.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멍석이나 평상 위에서 마당밥 먹던 사람들은 어둑어둑한 시간까지 함께 먹었다. 두세두세(두런두런) 말소리까지 비벼 먹었다.
요즘은 전력난과 전기요금을 걱정하면서 아무도 전등을 끄지 않는다. 불편하면 마음이 먼저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문재가 ‘도보순례’라는 시에서 선언했다.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라고. 마당도 멍석도 평상도 이제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저녁 어스름이 찾아오면 불을 켜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보는 것이다. 단 한 시간이라도 의도적인 정전 속에 나를 앉혀 놓는 것! 전등 스위치에 조급하게 손을 갖다 대는 못된 버릇을 단 한 번이라도 고쳐볼 일이다. 이 우주에 어떤 속도로 어둠이 찾아오는지, 그 어둠이 어떻게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지 느껴보지 못하고 살지 않았나? 빛이 우리를 평화롭게 하지 않으며, 빛이 우리를 감싸지 않는다. 어둠이 우리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고, 어둠이 우리를 감쌀 때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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