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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유신양복점

등록 2013-07-17 19:25

1972년 10월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0·17 비상조치’가 그것. 국회는 해산됐고 모든 정당 활동이 금지됐다. ‘유신헌법’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면서 박정희 영구 집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교사와 공무원까지 유신을 홍보하는 대열에 동원되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은 경북 안동 풍산면에서 가게를 열고 있었다. 어느 날 옆집에 면 소재지에서 가장 큰 양복점이 들어섰다. 간판부터 남달랐다. 양복점 진열장보다 큰 크기, 페인트로 쓴 조악한 붓글씨가 아니라 굵직굵직한 인쇄체. 그것도 최신식 볼록 돋움으로 처리했으니 다른 가게들은 기가 죽을 정도였다. ‘유신’을 내세우면 되지 않을 일도 척척 잘될 때였으므로 상호는 유신양복점! 양복점 아저씨는 눈치 빨랐고 대범했다. 하지만 그 대범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업식을 한 그날 저녁에 아저씨는 경찰에 불려갔다. 구국의 결단인 유신을 한낱 양복점의 상호로 사용한 게 문제가 된 것. 당장 간판을 철거하고 상호를 바꾸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루아침에 간판을 내려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아저씨는 밤새 궁리를 거듭한 끝에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간판을 철거하지 않고 상호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보았다. 양복점 아저씨가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간판에다 몇 겹씩 테이프를 잘라 갖다 붙이는 것을. 잠시 후 간판은 초라하게 이렇게 바뀌었다. 유선양복점.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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