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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단체영화

등록 2013-07-22 19:01

입장료 반값 정도를 내고 단체영화를 관람하는 날은 사뭇 들떴다. 비록 영화를 선택할 자유가 우리에게는 없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다. 영화관 가는 길에서는 줄을 잘 맞춰야 했다. 모자도 반듯하게 쓰고. 담배 냄새와 화장실의 지린내가 엉킨 영화관 특유의 냄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영화를 보러 몰래 들어갔다가 귀를 잡힌 채 끌려나올 일은 없었으니까.

단체로 관람하는 영화는 대부분 반공영화였다.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인민군은 기세 좋게 영화의 전반부를 장식하지만 끝내 용맹한 국군에 의해 섬멸된다. 난관을 헤치고 국군이 승리를 거둘 때, 영화관 안은 박수소리가 터진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다 아는 절정을 공유하면서도 우리는 짜릿함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혹시라도 열렬히 환호하는 감동의 공유자가 되지 않고 심드렁하게 앉아 있었다가는 어떻게 될까?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당장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반공영화를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전략은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나는 교사였고, 몇 번 학생들을 인솔해 영화관을 간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본 단체영화는 <킬링필드>였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학생들을 귀가시킨 뒤에는 어김없이 교사들의 회식 자리가 마련된다. 누군가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코 묻은 돈으로 이걸 꼭 사먹어야 해?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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