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원평에 사는 석현이 청년.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친구다. 순례자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사람을 ‘꼭두’라고 부르는데 이 친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 청년은 혼자 앞서가는 법이 없다. 주로 뒤에 처진 사람들을 살핀다. 걷다가 힘들어하는 어르신들의 배낭을 서너 개 대신 메주기도 하고, 자신의 지팡이를 손에 쥐여주기도 한다.
말을 더듬는 그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물, 물, 물고기랑, 대화, 화를 해요. 우리는 입이 딱 벌어졌다. 물고기하고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하지? 그 대답은 간단했으나 참으로 신비로웠다. 물고기의 눈을 오래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누, 눈을 바라보면 물, 물고기가 우, 우는 걸 발견할 때도 있어요. 아, 그때부터 우리는 이 청년을 ‘물고기 청년’이라 부르기로 했다. 물고기하고 눈 맞추며 대화하는 것처럼 연애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슬쩍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자기는 부끄러운 게 많아서 여자하고는 눈을 잘 맞추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다고 내게 고백했다. 이 순정파의 짜릿한 더듬거림!
박성우 시인과 청년이 길을 걷는데 달팽이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순례길의 상징 이미지가 달팽이인데,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의 앞글자를 딴 ‘느바기’. 차바퀴에 깔리거나 사람의 발에 밟힐지도 몰랐다. 그 청년은 달팽이들을 한 마리씩 집어들어 길 바깥으로 옮겨주며 걸었다고 한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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