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사이 교류가 활발하던 시절, 북한 방문길에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냉면을 맛보는 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쪽 냉면은 담백한 육수가 일품이다. 그 맛에 비하면 남쪽의 냉면 육수는 자극적일 정도로 달거나 지나치게 새콤한 편이다. ‘슴슴하다’고 해야 할지 ‘밍밍하다’고 해야 할지. 처음에 혀끝으로는 쉽게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육수가 가만히 목구멍을 넘어갈 때쯤에야 그 아늑하고 깊고 시원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다.
남쪽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당연히 가위를 달라고 해도 된다. 그렇지만 북쪽에서 ‘랭면’을 먹을 때는 품위 없이 가위를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손님의 동의도 없이 싹둑싹둑 면을 자르는 접대원도 없다. 김치나 고기 따위를 자르기 위해 밥상 위에 가위가 제멋대로 들락거리는 모양, 이거 편리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어색한 문화다.
2005년 여름, 남북작가대회가 열렸을 때 평양도 무척 더웠다. 대동강변의 ‘옥류관’ 거리에는 윗도리를 아예 벗어젖히고 활보하는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옥류관 앞은 그야말로 문전성시. 점심때 냉면을 한 그릇 먹기 위해 가족 단위로 바깥나들이를 한 평양 시민들이었다. 동화책을 말아 쥔 소녀의 손을 잡고 나온 아주머니, 양산을 쓰고 부채를 든 아가씨들, 인민군 복장의 청년… 남북 관계도 냉면 면발 후루룩 빨아들이듯이 그렇게 시원하게 풀렸으면 좋겠다.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육수를 들이마시듯이.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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