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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곤달걀

등록 2013-07-31 19:04

시장 안에 곤달걀을 삶아 안주로 내놓는 선술집이 있었다. 그 집을 지나가면 유황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 집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곤달걀 때문이다. 곤달걀은 부화되지 못한 달걀을 말한다. ‘곯은 달걀’의 준말. 곤달걀 속에는 껍질을 깨고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한 죽은 병아리가 들어 있다고 했다. 부리와 뼈와 털을 갖춘 병아리의 형상이 달걀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 곤달걀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어떤 선배의 말이 귀에 쟁쟁거린다. 그거 정력에 최고야. 좀 많이 자란 놈은 털을 뽑아가면서 먹기도 하지. 뼈가 오도독 씹힐 때도 있어. 그냥 여러 음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나 나는 곤달걀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필시 부화 과정에서 어떤 사고가 생겨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했을 터인데, 결국 달걀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애처로운 죽음 아닌가. 곤달걀은 축산물위생관리법에 의해 유통이 금지되어 있지만 아직도 버젓이 거래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정록 시인의 시 ‘부검뿐인 생’은 곤달걀 속 병아리에 대한 조시다. “곡식 멍석에 달기똥 한번 갈긴 적 없고/ 부지깽이 한 대 맞은 적 없는 착한 병아리,/ 언제부터 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시인은 “물 한 모금 마셔본 적 없는 눈망울”을 보며 그 눈망울이 자신을 내다보는 것 같다고 적는다. 이에 더해 그 눈망울이 “폐가의 우물 속 두레박”이라는 기막힌 비유로 애도의 마음을 표현한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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