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 시인은 7년생 사과나무 200그루를 가지고 있다. 본업은 대학교수인데 휴일에 짬짬이 나가 풀도 베고 거름도 주면서 애지중지 사과밭을 돌본다. 지난 5월 초에 사과꽃이나 구경하자면서 같이 사과밭에 간 적 있었다. 벌들이 거의 사라져 꽃의 수정이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사과밭 군데군데 꽃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보통 사과나무보다 꽃이 더 탐스러워 수정에 도움을 주는 나무였다. 그리고 벌통을 몇 개 사다 놓은 것도 보았다. 올해는 사과가 겁나게 많이 열릴 겁니다. 제가 한 상자는 꼭 드릴 거예요. 이 얼치기 농사꾼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이미 그가 꿈만 많은 중년이라는 걸 잘 안다. 작년에도 똑같은 약속을 했으나 태풍이 한 번 몰아친 이후 사과는 한 알도 맛보지 못했다. 그래서 속으로 말했다. 아나, 사과! 그럼에도 얼마 전까지 사과가 가지마다 정말 주렁주렁 열렸던 모양이다. 아깝지만 작은놈은 솎아 따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내 기대도 커졌다.
그러다가 며칠 전 전화기 속 그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거리는 것 같았다. 모처럼 사과밭을 나가봤더니 멧돼지들이 늘어 처진 가지에 달린 사과를 전부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의 사과밭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년에는 사과밭 주변 땅에 고구마를 심었다가 모조리 멧돼지들에게 상납한 이력을 가진 그였다. 그는 멧돼지를 위해 땀을 흘리며 밭을 가꾸는 멧돼지 농사꾼이 틀림없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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