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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버들치 시인

등록 2013-08-07 19:08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마을에서 제일 높은 끄트머리에 그의 오두막집이 있다. 그는 올해 쉰일곱살. 10년쯤 거기서 혼자 살았다. 반백의 머리로 밥해 먹고, 손님 오면 열무김치국수 내놓고, 기타 뜯다가, 가끔 시도 쓰며 그렇게 산다. 몇 년 전에는 도법·수경 스님하고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떠나 조선 천지를 걸었고, 동네 밴드를 만들어 ‘딴따라’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악양으로 옮기기 전에는 전주 모악산 아래 움막에서 살았다. 변소에 지붕이 없어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볼일을 보던 곳. 집 앞의 작은 계곡에 돗자리만한 웅덩이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중년이 배터리를 등에 지고 거기 사는 버들치를 잡으러 올라왔다. 그는 자기가 버들치를 기르는 사람이라고, 주인이라고 우기며 막아섰다. 썩 내려가라고 소리치며 쫓아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시로 썼고, 사람들이 그때부터 그를 ‘버들치 시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밤에 홀딱 벗고 그 웅덩이에 앉아 있으면 버들치들이 어디로 몰려오는지 알아? 이것들이 내 사타구니로 다가와서 주둥이로 막 깨무는 거야! 킥킥거리던 박남준 시인. 그가 최근 수술을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병원에 갔더니 불안전성 협심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던 것. 300만원이 넘는 수술비가 나왔는데 지인들이 선뜻 대납했다 한다. 직업을 가져본 적 없는 시인의 통장 잔고는 200만원. 죽고 나서 남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고 관 값으로 준비해 두었다는.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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