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가을은 온다

등록 2013-08-14 19:13

매미 울음소리가 왠지 녹슬었다고 생각될 때 가을은 온다. 벚나무가 그 어떤 나무보다 먼저 이파리를 땅으로 내려놓을 때 가을은 온다. 배롱나무가 더 이상 꽃을 밀어올리지 않을 때 가을은 온다. 팽나무 열매가 갈색으로 익어가고 산딸나무 열매가 붉어질 때 가을은 온다. 도라지꽃의 보랏빛을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여치의 젖은 무릎과 방아깨비의 팔꿈치와 귀뚜라미의 수염을 생각할 때 가을은 온다. 담배밭에서 담뱃잎을 더 딸 일이 없을 때 가을은 온다. 수수밭이 우수 어린 표정으로 과묵해질 때 가을은 온다. 냇물 소리가 귓가에서 차가워질 때 가을은 온다. 무심코 바라보던 저수지의 물빛이 문득 눈에 시리게 들어올 때 가을은 온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질 때 가을은 온다. 비행기가 늘어뜨리고 간 비행운을 따라가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텅 비어 있는 우편함을 괜히 기웃거릴 때 가을은 온다. 라디오에서 듣는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를 혼자 배워보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버스의 금간 유리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일 때 가을은 온다. 거리에서 연탄 실은 트럭을 자주 만나게 될 때 가을은 온다. 밤마다 다리에 감고 자던 죽부인과 이별하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넥타이를 매고 싶어지고 옷장을 정리하고 싶을 때 가을은 온다. 대학 다니는 아이의 2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심할 때 가을은 온다. 아버지, 라는 말이 울컥해질 때 가을은 온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한겨레 인기기사>

“담뱃재 털고 침 뱉은 물 맞으며 촬영했다”
“인도 여성 6000만명이 사라졌다”
홍명보 감독에게 누가 첫승 안겨줄까?
[화보]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명승부 명장면들
[화보] 그시절 찜통더위 날려버린 해수욕장 풍경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