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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산공부

등록 2013-08-18 19:08수정 2013-08-18 19:09

옛적부터 이름난 소리꾼들은 여름에 깊은 산속을 찾아가 판소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배웠다. 이를 ‘산공부’라고 한다. 그것은 득음을 위한 독공(獨功)의 시간이었고, 선생과 제자가 함께 먹고 자며 훈련하는 혹독한 ‘여름캠프’였다. 길게는 여름 한철 100일을 꼬박 산에서 보내기도 했다. ‘신창’(神唱)으로 부르는 명창 권삼득과 완주의 위봉폭포, 이중선과 부안의 직소폭포, 정정렬과 익산 심곡사 등이 산공부의 일화로 유명하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소리를 내지르려면 외따로 떨어진 암자나 움막집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 폭포를 끼고 있는 계곡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 만물의 생기와 활력이 충만한 여름에 산속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밖으로 내지른 만큼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있을 터. 그리하여 산공부는 자신과의 싸움이면서 크게는 우주와 대결을 벌이는 것.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선생의 입과 표정과 몸을 바라보며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선생의 호통과 매를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선생의 소리만 배우는 게 아니다. 선생의 숨소리, 몸짓, 버릇, 취향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 몸이 무기인 소리꾼들은 산공부를 통해 선생의 전부를 배우는 것이다.

소리꾼들의 이러한 집중과 몰두를 나는 다른 예술 장르에서 보지 못했다. 비록 산중은 아니었지만 국악과 개인연습실에서 이뤄지는 소리꾼들의 산공부를 잠깐 엿본 적 있다. 소름이 돋았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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