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평화공원 기념관 들머리에는 단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은 비석이 누워 있다. ‘백비’라고 부른다. ‘4·3’이 아직도 공식적인 이름을 얻지 못한 탓이다. 그 비석에 화가 강요배의 그림을 새겨 넣는다면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다. 그는 혼신을 다한 상상력으로 ‘4·3’을 살려낸 유일한 작가니까. 그가 살려낸 ‘4·3’은 <동백꽃 지다>(보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선거를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간 ‘한라산 자락 사람들’을 좀 보라. 한라산의 햇빛과 제주 사람들의 몸에 어려 있는 그늘이 그렇게 서늘하고 처연할 수 없다.
강요배 그림의 흡입력은 제주의 팽나무에서 비롯된다. 특히 해안 쪽 팽나무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느라 좌우 균형을 잡을 틈이 없다. 상층의 나뭇가지는 마치 어설픈 망나니에 의해 효수된 모습 같다. 제주로 여행을 떠난다는 사람들을 붙잡고 강요한다. 강요배의 그림을 닮은 팽나무를 찾아보지 않는 제주 여행은 말짱 도루묵이야. 구좌읍 세화리의 밭둑에 선 팽나무가 눈에 삼삼하다. 강요배, 그를 ‘제주의 화가’나 ‘민중화가’로 국한시켜 불러서는 안 된다. 나는 ‘적벽’ 같은 작품의 위태로운 결기도 좋아하지만 올봄 개인전에서 선보인 제주의 자연풍광과 일상을 담은 그림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자리에서 선생을 두어 번 뵌 적 있지만 가까이 가기 두렵다. 그림 때문이다. 우선 돈을 많이 벌어 선생의 팽나무 그림 한 점을 방에 턱 걸어놓은 다음에 뵈러 가야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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