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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통영

등록 2013-09-02 19:30

시인 백석은 ‘통영’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시를 썼다. 평안도 정주 출신인 그가 같은 제목으로 시를 여러 편 발표했다는 것은 그만큼 통영에 대한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1936년 1월, 백석은 친구 신현중과 함께 통영을 찾아간다. 지금이야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통영에 곧바로 닿지만, 그 당시에는 경부선 철도를 타고 삼랑진역을 거쳐 마산에서 배를 타고 어렵게 들어가야 했다. 백석은 짝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싶었다. 이화고녀에 다니던 박경련이 방학이어서 고향집에 내려와 있었던 것. 그녀의 집은 명정동에 있었지만 백석의 간절한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란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 …/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며 충렬사 돌계단에 주저앉아서 한탄한다. 이 시와 백석의 산문에 등장하는 ‘란’(蘭)이 바로 박경련을 가리킨다. 그녀는 백석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외사촌 서병직에게 손님 대접을 부탁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훗날 백석은 연작시 ‘남행시초’ 안에 또 ‘통영’이라는 소제목의 시를 쓴다. 시의 말미에 ‘서병직씨에게’라는 말을 붙여놓은 것은 통영 여행의 안내자에게 감사를 표시한 것. 백석은 통영 시편들에서 당시 통영의 풍경과 풍물과 역사를 매우 치밀하면서도 애틋하게 묘사한다. 그때 그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술을 마신 이튿날, 새벽 서호시장에 가서 ‘시락국’을 먹었을 것이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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