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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하이쿠

등록 2013-09-03 18:39

일본에서 현재 활동 중인 시인의 시집은 서점에서 거의 진열하지 않는다. 시집이 꽂혀 있어야 할 서가에 하이쿠 시집들만 빼곡하다. 그만큼 대중들이 하이쿠를 즐겨 읽는다. 하이쿠의 역사는 1000년 가까이 되는데, 일본에는 1000개에 가까운 동호인 모임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표현양식이 오랜 세월 동안 형식과 작법이 변하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는 건 예술사에서 드문 일. 하이쿠는 5-7-5 모두 17자의 소리로 된 매우 짧은 시가다. 그렇다고 글자 수만 맞춘다고 완성되는 건 아니다. 하이쿠는 형식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본 작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계절의 감각을 나타내는 말을 꼭 넣어야 하고, 첫째 구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하며, 반드시 끊어 읽는 맛이 나게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짧은 형식 안에 자연과 세상에 대해 촌철살인의 번뜩이는 지혜를 담으려면 이러한 약속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래된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든 물소리”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인데,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된 바 있다. 내게 가장 좋아하는 하이쿠를 대라면 간노 다다토모의 이 작품을 든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재가 되기 직전의 숯을 앞에 놓고 나무의 푸른 생을 상상한다는 것! 이 탁월한 상상력 앞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도 한 수 읽자.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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