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가는 뷰파인더로 입체적인 피사체를 바라보았겠지만 우리는 평면으로 바뀐 사진을 본다. 사진가가 보았던 것을 과연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인가?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그저 ‘보기(見)’가 아니라 ‘꿰뚫어보기(觀)’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통찰력이 가미되어야 예술로서 요건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사진가는 단순히 현실을 베끼는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보도사진 한 장이 세상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예를 우리는 자주 보았으며, 단 한 장의 사진이 수백 장의 원고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것은 사진가의 선별 능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사진가는 무심코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날로그 필름으로 사진을 현상하던 시절, 나는 사진가들은 왜 이렇게 필름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가는 대상을 선택한 다음, 꿰뚫어보기에 의해 셔터를 누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진가는 자신이 촬영한 모든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말은 하나의 사진이 대중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사진가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진가의 절대적인 권한이다. 그러한 선택에 의해 사진은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고, 예술가로서 사진가의 세계관을 강력하게 드러내게 된다. 사진의 힘이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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