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송이버섯

등록 2013-09-16 18:43

이제까지 딱 한 번밖에 먹어보지 못한, 앞으로도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잊을 수 없는 버섯이 있다.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재 너머 밭에 갔다 오신 외할아버지는 희한하게 생긴 버섯을 두어 개 따왔다. 외갓집 뒷산 참나무 숲에서는 볼 수 없었던 버섯이었다. 깊은 산속 소나무 밑에서 자란다고 했다. 한 뼘이나 되는 길쭉한 막대기 같았는데 만져보니 말랑말랑했다. 그거 참, 말 자지처럼 생겼네. 장터에서 짐을 나르던 말이 잠시 쉴 때 그걸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외할머니는 울타리 쪽으로 가시더니 호박잎을 몇 장 따왔다. 그 버섯을 호박잎에 싸서 아궁이의 짚불 속에다 넣었다. 호박잎에 싸는 것은 태우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때마침 가마솥에서 밥 익는 냄새가 외갓집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생전 처음 보는 이 버섯이 익기를 기다렸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외할머니가 짚불 속에서 꺼낸 호박잎을 펼치자 노릇하게 익은 버섯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한입에 덥석 먹고 싶었지만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외할머니는 버섯을 잘게 찢어 기름소금에 찍은 다음 입에 넣어주셨다. 아, 그때 콧속으로 훅 들어오던 버섯 향기와 짚불 냄새! 나는 그 냄새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송이버섯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강원도 양양, 경북 봉화와 울진에서는 송이버섯 축제가 열린다. 가을에 모처럼 호사를 누릴 기회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