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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표준

등록 2013-09-22 18:36

정부에서는 2007년부터 새로운 표준도량형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의 넓이가 평수에서 제곱미터로 바뀌었다. 법정 기준을 정해 두지 않고 여러 단위를 섞어 사용하면 경제활동의 질서에 혼란이 오고 세금을 부과할 때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의 진시황이 도량형 통일을 위해 표준이 되는 자와 저울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람살이의 체계를 잡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경제활동이라고 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표준’이 언제나 ‘표준화되지 못한 것들’을 객체화시킨다는 게 문제다. 표준어 시행규칙도 그렇다. 서울 사람들은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도 ‘누룽지’, 여기에 물을 붓고 끓여도 ‘누룽지’라 한다. 전라도에서는 눌은밥을 ‘깜밥’, 물에 끓인 걸 ‘누룽지’로 구별해서 부른다. 방언으로 치부하는 언어가 더욱 세밀하고 풍부하다는 것은 표준어의 빈약성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공인중개사 사무실 앞에는 ‘평’이 괄호 속에 어색하게 웅크리고 있다. 법으로 정해 놓은 규칙과 실제 생활언어가 갈등을 일으키는 꼴이다. 표준에 어깃장을 놓는 심사로 쓴 ‘공양’이라는 시가 있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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