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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꽃무릇

등록 2013-09-24 19:05

꽃무릇이 피었다. 완주 작업실 돌담 아래 오종종 무리 지은 꽃잎이 유난히 눈길을 잡아끈다. 꽃무릇은 나무 그늘이나 축축한 땅에서 잘 자라는데, 한자이름은 석산(石蒜). 9월 중순께 30~50㎝ 정도 꽃대가 올라와 그 머리에 열흘 정도 붉은 꽃이 핀다. 꽃이 지고 나면 꽃대가 곧 쓰러진다. 10월에 수선화 이파리 같은 푸른 잎이 나와 눈을 맞으며 겨울을 보내게 된다. 잎은 이듬해 5월 누렇게 시들어 사라진다. 잎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에서 여름을 보낸다. 그러다가 9월 초에 땅을 뚫고 한 뼘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한다. 상사화와 생리가 닮았다. 서로 그리워하기만 할 뿐 만나지 못하는 연애! 꽃무릇은 수선화과(科), 상사화속(屬)이지만 상사화와는 구별해야 한다. 몇해 전 이른 봄에 황동규 선생께 몇 뿌리를 캐드린 적이 있는데, 나중에 여쭈어보니 죽고 말았다고 말씀하셨다. 잎이 사라져버린 걸 죽은 것으로 착각하셨던 모양이다. 꽃무릇은 한개의 암술과 여섯개의 수술이 빨갛게 화관의 장식처럼 달려 있다. 나비들이 수분을 도와주러 오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꽃을 피우되 열매는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식물들은 오랜 옛날부터 씨앗으로 종을 퍼뜨리는 대신에 알뿌리로 번식하는 게 쉬워 그것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아, 꽃무릇을 보지 않고 가을이라고 말하지 말라. 9월이 가기 전에 고창 선운사로 당장 떠나라.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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