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울어대던 매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이 저렇게 높아 보이는 이유는 매미 소리의 소음이 허공에서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쯤 암매미가 산란한 알은 나뭇가지나 풀잎에 붙어 부화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감나무 밑둥치에 매미 허물 하나가 보인다. 매미가 벗어놓고 간 누더기다. 한 생명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텅 비어 있다. 한낱 미물의 일 같지가 않다. 우리를 낳은 늙은 어머니의 자궁이 저러할 것이다. 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매미는 두세 시간 용을 쓰고 치를 떨고 숨 막히는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휑하니 등이 갈라진 자국을 오래 바라본다. 자를 대고 칼로 자른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앞발은 아직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나무껍질을 꽉 붙잡고 있다.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알들에게 이런 자세를 태연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나는 혼자 상상해 본다. 겨울이 와서 이 매미 허물 속으로 눈이 내려 쌓이고, 그 눈이 볕 좋은 날 녹았다가, 그러다가 다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그 안에 얼음으로 된 매미 한 마리가 살게 된다는 것을. 발을 가슴께로 그러모은 얼음매미 말이다. 그 얼음매미도 허물 속에 갇혀 살다가 봄이 오면 세상의 속박을 훌훌 벗고 날아가겠지. 버릴 것 버리고, 내려둘 것은 내려두어야 신선의 흉내라도 내 볼 텐데, 나도 여전히 속 좁은 인간으로 세상에 갇혀 산다. 삶의 껍질을 벗을 수 없으니 술이라도 거나하게 마셔야 하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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