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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마당

등록 2013-10-09 19:17

농경사회에서 마당은 화초를 심는 정원이 아니었다. 곡식이나 고추 같은 열매를 말리는 건조장이었고, 이삭을 털어 알곡을 거두는 마당질의 장소였다. 마당에서 펌프로 길어 올린 물로 쌀을 씻고 세수를 하고 걸레를 빨았다. 여름 저녁에는 별들이 머리 위에서 밥 먹는 식구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밥을 먹었다. 마당 한쪽에 쌓여 있던 거름 더미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천연비료공장이었고, 흙의 유기물을 증가시키는 지렁이들의 안온한 일터였다. 거름 더미는 모깃불을 피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타고 남은 재는 또 훌륭한 거름이 되었고.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마당에서 이뤄졌다. 마당은 신랑 신부가 초례를 치르는 결혼식장이었고 회갑연이 열리던 잔치의 장소였으며 장례의식을 치르던 예식장이었다. 사전을 펼쳐 보니 별스럽게 ‘마당과부’라는 말도 있다. 마당에서 초례를 올리고 이내 남편을 잃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아이들에게 마당은 땅따먹기와 줄넘기놀이를 하던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어릴 적에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작은 고랑을 내며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했다. 마당을 빠져나간 빗물이 도랑이 되고 개울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까지 닿는 걸 생각하면서 키가 자랐고 마음이 살쪘다. 마당에서부터 시작하는 상상은 끝이 없었다. 마당하고 접촉해본 경험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나중에 아파트 거실을 마당으로 여길까? 마당을 밟고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가을이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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