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작업실 담장 밑에 두어 평 될까 말까 한 땅이 있다. 거기에 재미삼아 상추나 고추 따위를 심는다. 언젠가 얼갈이배추 씨앗을 뿌린 적이 있다. 어느 날 가보니 잎사귀가 한 뼘 크기나 자라 있었다. 때를 놓칠세라 연한 잎사귀를 뜯어먹기 위해 애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놈들이 얼갈이배추 잎 위에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면서 아기작아기작 또 배를 채우고 있었다. 이 어린것들이 많이 먹고 어서 컸으면 싶었다. 그걸 신기해하며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동네 할머니 한 분이 혀를 쯧쯧 차며 약 좀 혀, 하신다. 약을 치라는 말을 여기서는 약을 ‘한다’라고 한다. 그러마고 말은 했으나 나는 약을 칠 생각이 없었다. 무슨 생태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애벌레를 키우는 것도 ‘농사’라고 스스로에게 우길 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내가 마치 애벌레 농사꾼이 된 것 같았다. 애벌레가 자라 나비가 되면 나는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면서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나비는 동네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다. 나비는 동네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기른 나비가 알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비의 주인이므로.
이 이야기를 시로 쓴 다음에 제목을 ‘재테크’라고 붙였다. 평소에 재산을 늘리는 주식 투자 한 번 해보지 않은 내가 투기꾼이 되었던 것. 밑천 없이 부자가 되는 법도 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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