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거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내게는 김민기가 그렇다. 1980년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고, 거의 모든 집회 때마다 ‘아침이슬’을 부르거나 들었다. 술집에서 옆자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이 노래를 부르는 자들만큼은 용서가 되던 시절이었다. 대학 방송국에 그 귀하다는 김민기의 낡은 엘피음반이 한 장 있었다. 나는 거기 죽치고 앉아 매일 ‘늙은 군인의 노래’ ‘서울로 가는 길’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 ‘기지촌’ 등을 듣고 또 들었다. 5공 치하였으므로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는 노래들이었다. 기타 연주 하나로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아프게 세상을 쓰다듬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곤 했다.
김민기는 1951년 한국전쟁 중에 전북 이리(지금의 익산)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어느 가을, 이리역 앞 순댓국밥 집에서 문화운동을 하던 선배의 소개로 그이를 처음 만난 적 있다. 얼마 전까지 김제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나에게는 전설 속의 이름이었으나, 그이는 조금 지쳐 보였다. 그러다가 김민기와 대학 때 야학을 함께 하던 이도성 선생을 이태 전에 만나 근황을 살짝 엿듣기도 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이렇게 시작하는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차를 운전하면서 요즘 매일 듣는다. 나는 또 푹 빠져 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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