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연애편지를 한 통 받았다. “요 몇 달 사이 우리 안도현 시인이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건 웬일인지 모르겠군요.” 편지를 보낸 이는 10여년 전 변산반도의 월명암에서 딱 한 번 만났던 분이다. <한겨레>의 이 지면 ‘발견’을 보고 평생 처음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편지를 쓴다고 수줍은 고백이 이어진다. 전주에 내려오는 길에 한 번 만나고 싶어 수소문을 했으나 휴대전화가 없어 연락이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그럼 그만인데 왜 이토록 앙탈을 부릴까요. 사실은 제가 귀가 어두워졌어요. 몇 달 사이에 단둘이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 전에는 소리는 가물가물 들리는데 말을 못 알아들어요. 한쪽 기능이 마비되니까 눈 욕심이 생겨요. 그 가운데도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은 그쪽 사정과는 관계없이 ‘사정없이’ 보고 싶어요. 요즈음 저는 한겨레 보는 맛으로 살아요. 이것이 뭘까요. 존경, 사랑, 집착,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신앙, 맹신, 중독 같은……”
전화가 왔다. 학교에 왔으니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묻기에 연구실을 알려드렸다. 사모님과 함께 무작정 찾아오신 분은 김진배 선생. 1934년생인 이 어른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후 야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최근에는 <두 얼굴의 헌법>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다음에는 내가 존경하는 소설가 최일남 선생과 같이 전주에 오신다고 했으니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맛있는 걸 많이 사드려야지. 연애편지 받고 나서 자랑한다고 너무 시샘하지는 마시라.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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