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권력에 의해 양민이 희생된 제주 4·3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4·3은 아직도 완전한 상생과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정한 지역에서 일어난, 외면해야 할 사건으로 기억하기에는 그 아픔이 아물지 않았다. 뭍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제주를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거나 괜찮은 관광지쯤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제주를 찾는 일이 그래서 늘 쾌청하지는 않다.
곶자왈을 걷고 오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바위가 크고 작게 갈라지면서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울퉁불퉁한 지형을 이룬 곳이다. 이 지형은 빗물을 받아 지하수를 품고 있기에 적합하고, 따뜻하고 습도가 높기 때문에 고사리와 이끼류가 성장하는 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같이 어울려 사는 곳이어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지형이라고 한다. 제주시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한 대정 곶자왈을 두 시간쯤 걸었다. 아직 관광객이 많이 찾지는 않아서 원시 그대로의 숲을 만난 것 같았다. 육지의 숲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나무들이 반가웠다. 참나무과의 종가시나무, 녹나무과의 잎이 반질반질하고 푸른 식물들, 그리고 폭낭(팽나무), 동백나무…. 예전에 소와 말이 다니던 길에 돌담을 낮게 쌓아둔 곳도 있었다. 새소리는 어찌 그리 청청하던지. 아니, 그 새소리는 우리 일행을 숲의 침략자로 여기고 경계하는 울음이었을까?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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