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빵긋 웃어라, 입속을 보자.”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이다. 앞에서 보는 몸매든 뒤에서 보는 몸매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것이다. 사랑에 한창 빠져 있을 때에는 그 대상의 약점마저도 아름답게 보기 마련이다.
사람은 앞모습을 보고 만난다. 앞모습을 보면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차차 서로에게 동화되어 간다. 앞모습을 보면서 결혼사진을 찍고 ‘우리는 하나’라고 굳게 믿게 된다. 그런데 앞모습만 바라보고 살다가 가끔은 균열의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랑하던 대상에게서 아예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을 고려하거나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앞모습에 빠져 있다가 보면 뒷모습을 의외로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사랑의 속성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옆모습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옆모습을 무시하는 것은 파국에 이르는 길이다. 저 숲의 나무 좀 봐라.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애써 마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 다투다가 등을 돌리고 밤새 엉엉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나무에게 일생 동안 그저 옆모습만 슬쩍 보여준다. 옆모습이라는 말, 얼마나 좋은가. 앞모습만 사랑하지 말고 옆모습도 사랑할 일이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옆모습. 당신하고 나하고는 옆모습을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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