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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스며드는 것

등록 2013-11-10 19:01

서해안에 꽃게가 풍년이라고 한다. 꽃게는 쪄 먹어도 좋고, 탕을 끓여도 좋다. 바닷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라면을 끓일 때 넣으면 맛이 그만이라고 한다. 또 간장게장이나 양념게장의 미혹에 빠져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간장게장은 오래 보관하기 위해 지독하게 짜게 담그던 것인데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심심하면서 달달해졌다. 전북 부안의 시장통에는 살아 있는 꽃게를 즉석에서 양념에 버무려 내놓는 집도 있다. 가을은 금어기 동안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수꽃게가 인기다. 봄에는 알이 가득 찬 암꽃게를 제일로 친다.

꿈틀거리는 꽃게를 게장으로 담글 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나는 침이 넘어간다. 그때 죽음을 목전에 둔 꽃게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알을 품은 꽃게의 입장이라면? 그런 궁리를 하면서 시 한 편을 썼다. ‘스며드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시를 읽고 나서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었다는 독자들을 가끔 만난다. 미안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내 시에 걸려든 것! 나는 여전히 잘 먹는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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