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70년대만 해도 머리로 공을 받는 헤딩은 ‘헤띵’이었고, 버스는 ‘뻐스’였고, 자동차의 후진은 ‘뒤빠꾸’였고, 양동이는 ‘바께스’였고, 팬티는 ‘빤쓰’였다. 외국어나 외래어는 우리말에 흔치 않은 된소리로 발음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일까. 어떤 말에 대한 기억은 그 말을 사용했던 시대를 생생하게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 ‘새마을운동’이라는 말도 그렇다. 이를 찬양하고 싶은 사람은 생활에 일대 변화를 불러온 혁신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군대식 줄서기 운동이고,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내 동생에게는 고역스런 퇴비증산운동일 뿐이다.
“시 쓰다가/ 날선 흰 종이에 손 벤 날/ 뒤져봐도/ 아까징끼 보이지 않는 날” 내가 쓴 ‘외로움’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독자 한 분이 전화로 항의를 해왔다. 말을 다루는 알 만한 사람이 일본말의 잔재인 ‘아까징끼’를 함부로 쓰는 게 못마땅하다는 거였다. 어렸을 적에 손을 베거나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났을 때 어머니는 아까징끼를 발라주셨다. “어머니가 머큐로크롬을 발라주셨다”는 문장을 나는 쓸 수 없는 것이다. 지금 30, 40대에게는 ‘옥도정기’나 ‘빨간약’이라는 용어가 더 친근할지 모른다. 하지만 50대 이상에게는 ‘아까징끼’ 이외에 달리 더 적확한 용어가 없다. 표준과 규칙에 맞는 말이라고 해서 늘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지금 아까징끼는 약국에 없다. 수은을 함유하고 있다고 해서 시판하지 않고 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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