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고등학교 때 문예반 선생님은 <현대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도광의 시인이셨다. 1학년 신입생에게는 직접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바람 부는 날 운동장 가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선생님은 영락없는 시인이었다. 후리후리한 키마저도 시인답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선생님은 시인이기 때문에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지 않고 거리를 걸어가는 분이라 했다. 그래, 시인은 그럴 거야. 아침이슬처럼 맑은 생각만 하면서 사실 거야. 1학년 후반기쯤 처음으로 첨삭지도를 받을 기회가 왔다. 내가 애써 쓴 시는 교무실에서 빨간 사인펜으로 처참하게 지워졌고,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선생님은 언어의 절제를 누구보다 강조하던 분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도장을 주시며 서무실에 가서 봉급을 좀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지금도 기억한다, 누런 봉투에 쓰여 있던 실수령액 7천원. 나머지 봉급은 술값으로 미리 가불해서 썼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맞아, 시인은 선생님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살아야 해.
선생님과 술자리를 같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우산에 대해 여쭈었다. 나를 유심히 보시더니, 여태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고 하며 웃으셨다. 문학소년들의 철없는 상상이 낳은 착각이었다. 대구에 가면 우리는 혹시나 싶어 선생님의 단골술집에서 모인다. 선생님의 외상값이 얼마인지 나는 알지만 더 오래 술을 드셔야 하므로 일부러 갚아드리지 않고 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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