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생 안촌댁은 열여섯 살에 안양의 방직공장에서 3년 동안 새빠지게 일했다. 울도 담도 없는 가난한 집으로 열아홉에 시집와서 아들 넷, 딸 둘을 낳았다. 자그마한 몸매였지만 남편 따라 농사 척척 짓고, 길쌈 잘하고, 아래위를 살갑게 챙겼다. 젊을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양글이’로 불렀다. ‘양글다’는 말은 똑똑하고 야무지고 경우가 밝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작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을 날마다 바라보며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살았다. 부지런한 나무처럼 논으로 밭으로 걸어 다녔다. 안촌댁이 거름 더미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 읊조리는 주문이 있었다. 눈 감아라, 눈 감아라. 거름 속에 사는 지렁이들한테 조심하라고 이르는 말이었다. 하찮은 미물도 식구 삼으며 살았다. 내가 아주 가끔 찾아뵐 때마다 감자, 파, 풋고추, 오이, 호박을 바리바리 싸서 손에 들려주던 안촌댁.
몇 년 전부터 안촌댁은 농사를 접었다. 그예 몸이 고장이 난 것이다. 평생 살던 고향집을 버리고 전주에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외로워진 안촌댁의 머릿속은 두고 온 집 걱정으로 가득 찼다. 맏며느리가 한복집에서 버린 비단 조각을 모아 안촌댁에게 갖다드렸다. 옛적부터 바느질 솜씨 하나는 끝내주던 시어머니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안촌댁의 손끝에서 예술작품 같은 밥상보와 차받침들이 하나씩 태어나기 시작했다. 아들이 쓴 시도 더듬더듬 몇 줄씩 읽게 되었다. 올해 여든여섯, 안촌댁은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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