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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채현국

등록 2013-12-17 19:04

경남 양산 효암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 학교 이사장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사립학교 이사장이라면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교사와 학생들을 굽어봐야 하는데 그런 분이 안 보이기 때문. 저 할배는 뭐 하는 분이지? 허름한 옷차림에 낡은 신발을 신고 모자를 눌러쓴 채 교정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는 한 노인에게 교사들이 꾸벅 절을 할 뿐이다. 도대체 격식이라고는 따지지 않지만, 눈매가 범상치 않은 키 작은 할배. 채현국 선생이다.

선생은 입을 열었다 하면 그 총명한 기억들이 숨 가쁘게 줄줄 따라나온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백낙청·신경림·구중서 같은 어르신들의 이름을 수박씨 뱉듯 툭툭 뱉어내셨다. 선생에게 세간의 권위 따위는 검불에 불과하다. 서울대 철학과 졸업 후 끼 많은 청년은 탄광을 하던 부친 채기업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다. 언론인 임재경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기자나 문인과 같은 지식인들에게 술과 밥을 먹이고 심지어 집을 사주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쫓기는 이들을 감싸고 뒤를 돌봐주는 일을 자청했다. 부잣집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 따뜻하면서 파격적인 채현국 이사장이 졸업식에서 하신다는 명언 하나. “상을 받는 아이들은 상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덕분에 상을 받는 거다.” 서울대에 낙방한 아이에게는 이런 기막힌 위로를 건넨다. “서울대 다닐 것 없다. 서울대 다닌 놈들이 더 아첨꾼 된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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