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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기도

등록 2013-12-31 19:18

새해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난데없는 불행으로 마음 졸이지 않게 하시고, 가진 게 많아서 신나는 사람보다는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가 되더라도 ‘대박’의 요행 따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내 와이셔츠를 적시게 될 땀방울만큼만 돈을 벌게 하시고, 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열정을 소비해온 지난날을 꾸짖어주소서. 부디 내가 나 아닌 이들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던 이에게는 남의 자식의 구멍 난 양말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내 말을 늘어놓느라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파도 소리를 담는 소라의 귀를 주소서. 백지장처럼 맑고 높은 정신으로 이 풍진 세상을 견디게 하소서. 이 땅의 젊은 아들딸들에게 역사는 멀찍이 서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프게 몸에 새기는 것임을 깨우쳐주시고, 늙고 병들고 나약한 이의 손등에 당신의 손을 얹어 이들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시간을 연장해주소서. 당신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시고, 통하지 않는 것을 통하게 해주소서. 겨울 팽나무의 흔들리는 가지 끝과 땅속의 묵묵한 뿌리가 한 식구라는 걸 알게 하시고, 숲 속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길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골목길이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 당신이 괴롭지 않은 세상 일구게 하소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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