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열두 달을 달랑 스케치북 크기만 한 종이 한 장에 인쇄한 달력이 있었다. 지역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사진을 중앙에 떡하니 배치하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배포한 것이었다. 배포 책임자는 주로 마을의 이장이거나 통장이었다. 1970년대 농촌에는 집집마다 그런 달력이 붙어 있었다. 그 달력 속 인물의 얼굴과 넥타이는 저절로 머리에 각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각적인 상업용 광고나 영상물이 많지 않던 시절에 우리는 눈만 뜨면 그를 바라봐야 했으니까. 아니, 달력 속의 정치인이 우리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80년대가 되자 소주나 맥주를 파는 회사에서 제작한 달력에는 어김없이 비키니 차림의 미인이 등장했다. 포르노그래피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에 눈이 휘둥그레진 사내들 꽤 많았을 것이다. 해안지역의 수협에서 만든 달력을 본 적 있다. 어민들의 생업에 필요한 바다의 물때를 표시해놓고 있어서 놀라웠다. 하루에 한 장씩 찢어 넘기던 일력은 농촌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화장지가 없던 시절에 이보다 더 부드러운 종이는 없었다. 일력의 얇은 미농지는 붓글씨 연습을 하기에도 좋았고, 어른들은 이 종이로 담뱃잎을 말아 피웠다.
요 몇 년 사이 달력이 부쩍 귀해졌다.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날짜만 큼직하게 박힌 달력을 올해는 얻지 못했다. 거기에는 이사하기 좋은 ‘손 없는 날’도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달력이란 무엇인가? 다달이 다가오게 될 역사를 먼저 보여주는 선지자 아니었던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트위터 @ahndh6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