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잔치나 장례의식 때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잡았다. 돼지를 ‘도새기’라 부르는 제주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 음식 몸국과 고기국수는 잔치음식이었다. 몸국의 ‘몸’은 바닷가 바위틈에 사는 해조류의 하나인 ‘모자반’을 말한다. 톳하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종류다. 몸국은 돼지 등뼈를 삶아 우린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밤새 끓여 만든다.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 걸쭉한 맛이 나는데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시인 정군칠 형이 세상을 뜨는 아침에 집에서 직접 끓여 왔다는 몸국이 나왔다. 장례식장에서 코를 박고 그 뜨끈한 슬픔을 퍼먹던 기억…….
돼지고기를 삶은 뽀얀 육수에 면을 말아 편육을 올린 국수가 고기국수다. 일본 라멘 육수에 비해 훨씬 담백한 편이다. 이때 면은 소면보다 굵은 중면을 쓴다. 비계가 적당히 붙어 있는 편육은 얇게 썰어 올리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요즘은 술이 얼큰해진 술꾼들이 밤늦게 마지막으로 들러 한잔 더 하는 집이 고기국숫집이라 한다.
제주는 가히 국수 천국이라 할 만하다. 규모가 작지만 제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한림의 ‘비타민국수’, 고기국수의 빨간 육수가 개운하다는 제주공항 끄트머리쯤의 ‘고르멍들으멍’, 그리고 꿩메밀국수가 일품이라는 동문시장 안의 오래된 집 ‘골목식당’ 등 섭렵해야 할 곳이 너무 많다. 근래엔 멸치국수에다 돼지고기 편육을 얹은 고멸국수도 등장했다는데, 이건 또 어디를 찾아가서 맛을 봐야 하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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