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늦게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올랐다는 화산섬이 비양도다. ‘올레길을 만든 여자’ 서명숙이 친구 허영선 시인과 함께 가서 울었다는 섬. 한림항에서 하루에 세번 배가 오가는데, 시간은 15분쯤 걸린다. 포구 앞 ‘호돌이식당’에 보말죽을 예약해놓고 가족들과 해변을 따라 걸었다. 아무 데나 앉아 햇볕에 발등을 쬐어도 좋을 것 같았다. 서쪽 해변에는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었고, 가마우지들이 기이하게 생긴 바위에 올라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수한 보말죽을 한그릇 뚝딱 비우고 포구로 나갔다. 어떤 남자아이가 혼자 낚시를 하고 있었다. 짤막한 대나무에 실을 묶은 낚싯대다. 너 몇살이니? 이름은? 아이의 등에 대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개인정보는 말할 수 없어요, 한다. 이런 맹랑한 녀석을 봤나. 머쓱해진 나는 한참 기다렸다가 또 물었다. 미끼는 뭘 쓰지? 대답은 두 글자였다. 새우.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여기선 어떤 물고기가 주로 잡혀? 너도 큰 거 잡아본 적 있어? 내 불찰이었다. 아이참, 자꾸 귀찮게 말 시키지 말아요. 그냥 보고만 있어요! 이러던 녀석이 친절해진 건 함께 간 아들 덕분이었다. 공을 같이 차자고 제안했던 것. 전교생이 모두 5명인 비양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대학생인 아들과 축구공을 뻥뻥 차올리던 녀석의 이름은 건우였다. 팔뚝만 한 숭어도 잡아본 적 있는, 엄마와 떨어져 사는, 흰 강아지를 안고 나와 보여주던, 떠날 때 손을 흔들던 4학년 꼬마.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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