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그 어머니는 열여덟살에 광주의 방직공장 여공이 되었다. 일제 때였다. 해방 후에 전남 구례의 어느 양반집 후살이로 들어가 서른이 되어서야 아들 하나를 얻었다. 인공 때는 국군이 들어오면 국군에게, 밤사람이 들어오면 밤사람에게 밥해주었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이며 아들을 키웠다. “비가 오면 덕석걷이, 타작 때면 홀태앗이/ 누에 철엔 뽕걷이, 풀짐 철엔 먼 산 가기/ 여름 내내 삼삼기, 겨우 내내 무명잣기” 젊을 적엔 상일꾼처럼 억세게 일도 잘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 혼자가 되자 서울 사는 아들이 그 어머니를 모셔갔다. 그때부터 그 어머니는 고층 아파트에 갇힌 새가 되었다. 아들 내외 출근한 뒤에 손주딸 유치원 바래다주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아파트라는 숨 막히는 공간에서 그 어머니는 결국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아기처럼 칭얼거리다가 일흔아홉의 나이로. 아들의 심장에 어머니가 박혔다.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밀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이시영 시인의 시 ‘어머니 생각’ 전문이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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