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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숭어회

등록 2014-02-04 18:45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제주의 겨울은 방어회가 제철이지만, 뭍에서는 겨울에 숭어회가 최고다. 겨울을 나기 위해 움직임이 둔해진 숭어의 살에 알맞게 기름이 올라 있을 때인 것이다. 숭어는 도미나 광어, 혹은 우럭처럼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겨울 숭어에게 오죽하면 ‘설(雪)숭어’라는 말을 붙였겠는가. 눈이라도 설설 내리는 날이면 걸어서 숭어회를 파는 집을 찾아가고 싶어진다. 두꺼운 점퍼 속에 자라처럼 목을 집어넣고 싸드락싸드락 걸어가면 더 좋을 것이다. 화려한 횟집이 아니라 오래된 책표지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이면 된다. 식당 입구 수족관에 가득한 숭어를 먼저 눈요기해볼 일이다. 바다를 뚫고 다닌 이놈의 몸매는 얼마나 늘씬하고 미끈하게 잘생겼는가. 이놈의 은빛 비늘 갑옷을 한 벌 모방해서 옷을 만들고 싶을지도 모른다. 다른 횟감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도 숭어의 큰 매력이다. 발그레한 살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기 전에 찬 소주를 한 잔 마시자. 일이 없다면 서너 잔이라도 마시자. 세상살이에 지친 심장을 뜨끈하게 데우자. 전북 부안지방에서는 쫄깃한 숭어회를 묵은 김치에 싸서 먹기도 한다. 이때 참기름을 살짝 찍어도 좋다.

바다의 수온이 높아지면 숭어회의 맛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숭어회를 맛봐야 한다. 5~6월 산란철이 되면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가는 숭어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그때는 숭어를 보며 침을 삼키면 안 된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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