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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박배엽

등록 2014-02-05 19:16수정 2014-02-05 19:17

백두산을 세 번 가 보았다. 두 번은 중국으로 돌아서, 한 번은 남북작가대회 때 북한 쪽 삼지연비행장에 내려 백두산에 올랐다. 처음 백두산을 오를 때, 미안하고 미안했다. 박배엽 형 때문이었다. 그는 내 땅을 밟지 않고서는 돈을 도로 준대도 백두산 안 간다고 쓴 시인이었다. 키가 멀대처럼 큰 그는 전북대 앞 사회과학서점 ‘새날’의 주인이었다. 1957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고 전주에서 줄곧 살았다. 전주고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졸업장을 위해 ‘대학 따위’ 다니는 걸 그는 혐오했다. 숱하게 시국 관련 성명서를 쓰던 시인, 불완전한 독서광, 질리도록 토론을 즐긴 카페혁명가, 오토바이 라이더, 한심한 끽연가, 지리산에 미친 ‘산꾼’이었다. 목수가 꿈이었던 그는 내게 책장을 하나 짜주기도 했지만, 내기바둑으로 내 술을 더 많이 뺏어 먹었다. 아니, 나도 한때는 그의 지갑 덕을 보던 해직교사 시절이 있었지. 전주에서 빈둥거리던 사람치고 그의 술 안 얻어 마신 사람이 없다.

그는 생전에 묘비도 시집 한 권도 남기지 못했다. 아니 안 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신귀백이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한 해 전에 만들었다. 디브이디(DVD)가 필요한 분, 그와의 추억을 잊을 수 없는 분들은 내게 연락하시라. 박배엽 형이 세상을 뜬 지 10년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뜨거웠으나 우리는 희멀겋고 팍팍한 이곳에 아직도 웅크리고 산다. 죽어서도 그는 “니들 뭐해?” 하고 물을 것 같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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