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하얗게 센 머리, 이마의 깊은 주름, 맑고 큰 눈, 잘생긴 미소년 같은 웃음…… 전우익 선생을 생각하면 이런 모습들이 떠오른다. 1980년대 중반 경북 안동에서 권정생 선생하고 가끔 만났다. 정기적으로 채플린 영화를 보는 모임에서였다. 정호경 신부, 이현주 목사, 이오덕 선생의 이름들이 뒤풀이 자리에서 자주 오르내렸다.
전우익 선생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경성제대를 입학했으나 중도에 그만두었다. 해방 후 ‘민청’에서 반제국주의 청년운동에 참여했다가 6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출옥 후에도 보호관찰 대상자로 지목되어 수십년간 고향 바깥으로 여행조차 할 수 없었다. 본명은 우익인데 좌익운동을 한 것이 죄였다. 족쇄가 풀린 뒤에는 전주에도 몇 번 놀러 오셨다.
선생은 농사짓고 나무 가꾸며 고향의 오래된 고가에서, 천천히, 살았다. 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댁으로 찾아뵈었을 때, 정리하지 않은 마당의 풀과 살림과 책들이 고집 센 주인을 닮아 있었던 것 같다. 선생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고, 그런 자세로 담배를 피웠다. 그 무렵 선생은 소나무에 빠져 있었다. 소나무 토막으로 책상이나 목침을 만들고, 남은 대팻밥은 베갯속으로 쓰고, 톱밥으로는 술을 담갔다. 나무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라는 책을 내시더니 2004년 12월19일 혼자 하늘로 가셨다. 우리는 이 나쁜 세상을 꾸짖을 ‘언눔’을 잃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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