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중반에 나온 <신임꺽정전>이라는 책이 있다. 음담패설이 적잖아 날개 돋친듯 팔렸다. 그런데 작가는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인세가 들어오지 않았다. 서점가를 조사해 보았더니 인지를 붙이지 않은 책이 은밀하게 다수 유통되고 있었다. 작가는 출판사 사장을 만나 술집에서 뜨거운 술을 얼굴에 끼얹었다. 오늘 발가벗겨 죽여 버리겠다고 호통을 쳤다. 상황을 눈치챈 사장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슬슬 꽁무니를 뺐다. 작가는 화장실을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소변기에 군밤 한 봉지를 털어놓고 거기에 태연하게 오줌을 누었다. 이 군밤을 네가 먹어. 손으로 집어먹지 말고 입으로 말이야. 사장은 인세를 당장 지급하겠다며 싹싹 빌었다. 이에 개의치 않고 작가는 엄포를 놓았다. 그럼 얼굴을 처박고 입으로 먹는 시늉이라도 해봐. 출판사 대표는 실제로 그렇게 했고, 다시 술상으로 돌아와 인세를 두둑하게 건넨 다음, 같이 술을 마셨다.
고은의 <1950년대>(향연)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여기 등장하는 작가가 조영암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승려 생활을 한 적 있는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최남선, 박종화, 이은상, 백철 등을 비난하는 글을 서슴없이 썼다. 이에 항의하면 멱살을 잡았다. 물불을 가리지 않던 그는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1959년 <야화>라는 야릇한 잡지에 ‘하와이 근성 시비’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모욕감을 줬던 것. 그의 행패가 도를 넘는 순간이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