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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배호

등록 2014-03-19 19:03

젊은 외삼촌에게는 ‘야전’이라는 게 있었다. 배터리를 넣어서 쓰던 휴대용 야외전축 말이다. 초등학교 때 그 전축에다 엘피(LP)판을 얹어 배호의 노래를 수없이 들었다.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들고 노래를 따라 불러보기도 했다. 호소력 짙은 배호의 목소리로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보지 못한 서울의, 그 공원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았다. ‘파도’나 ‘영시의 이별’은 얼마나 좋은가. ‘누가 울어’라는 노래의 “검은 눈을 적시나”라는 끝 부분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나중에 노래방이 생겼을 때 배호의 노래를 흉내내보려고 했지만 나는 번번이 실패했다. 내 목청은 배호의 스타일을 따르기에는 남성 저음의 중후함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배호의 목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흉내를 잘 내던 선배도 있었다. 술자리의 마지막은 늘 그 선배의 목소리로 평정되었다.

배호라는 이름은 예명이고 본명은 배신웅이다. 그는 아버지가 일제 때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해서 산둥성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가수로 활동하던 시간은 5년 남짓. 이십대 후반에 가수로서 절정기를 보내고 나서 한창 활동할 나이인 서른살에 신장염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 그가 남긴 90곡이 넘는 노래는 하나하나가 명곡이다. 성량이 풍부하지만 느끼한 기름기가 없는 그 목소리의 호소력은 한 시대를 휘어잡을 만했다. 배호가 생각나서 얼마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시디 한장을 샀는데, 아뿔싸, 짝퉁이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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