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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도현의 발견] 동정부부

등록 2014-03-24 18:48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전주 시내를 벗어나 남원 방향으로 막 접어들면 왼쪽에 가파르게 솟은 산이 하나 있다. 그 산을 중바위산, 혹은 승암산으로 부른다. 근래 들어 다시 이름이 하나 생겼는데 치명자산이다. ‘치명자’는 순교자의 옛말이다.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 성지는 세계에서 유일한 동정부부인 요한 유중철과 루갈다 이순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묻혀 있는 곳이다. 18세기 말 천주교가 조정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시절, 유중철과 이순이는 혼인을 한 부부임에도 부모 앞에서 남매처럼 살기로 하고 동정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이들의 결혼은 박해를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제사를 모시지 않거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천주교도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었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두 청춘 남녀가 한방에 살면서 인간으로서 본능의 유혹도 있었다. 4년을 그렇게 지냈으니 신앙인으로서의 약속을 팽개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결국 유중철과 이순이는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옥중에서 이순이는 유중철이 먼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순이 루갈다 옥중편지>(흐름출판사)는 당시 이순이가 친정에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이다. 그는 자신도 곧 순교할 것을 예상하면서 순교를 ‘결실’이며 ‘은혜’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죽는 것을 산 것으로 알고 산 것을 죽은 것으로 알라”는 편지는 지금 읽어도 절절하다. 그는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에 처해져 생을 마감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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